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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 인터뷰: 금기, 그게 뭔가요?



신수진(아래 신) 이 작품을 보고 ‘이게 사진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으실 것 같습니다. 윤지선(아래 윤) 전공은 회화였지만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비전공자 입장에서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미국의 초현실주의 사진가이자 화가인 만 레이Man Ray의 ‘나는 그릴 수 없는 것을 사진으로 찍고, 찍을 수 없는 것을 그린다’라는 말이 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신 ‘Rag Face’연작으로 개인전을 여셨는데, 사진 위에 재봉질을 하십니다. 왜 이런 방법을 선택하셨는지요? 윤 얼굴 사진 위에 바느질과 재봉질을 반복하다 보면 입술이 삐뚤어지거나 눈이 찡그려지는 것처럼 박음질에 따라 얼굴이 변형됩니다. 짧은 시간을 포착해 현실을 그대로 고정시키는 것이 사진의 특성이지만 저는 사진을 찍은 이후에도 장면이 움직이거나 변형되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퀀스sequence 사진으로 유명한 듀안 마이클 Duane Michals의 작품은 여러 장의 사진 속에서 서로를 연결시키는 단서들이 반복되는데, 제 작품 속에서는 한 장 안에 그런 연결된 시간성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 전부 자화상으로 만드셨습니다. 특별히 자화상인 이유가 있습니까? 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른 분들이 얼굴을 빌려주지 않아서 그런 거지요. (웃음) 제가 미술대학에서 배웠던 것은 이미지를 ‘오브제’로 바라보는 훈련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사진에 찍히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믿었는데, 얼마나 무지한 모습이냐’라는 식으로 실제와 이미지를 구별하는 인식과 태도에 관해서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예술 교육을 받은 동료들조타 ‘얼굴에 어떻게 바느질을 하느냐’는 식으로 반응할 때는 무척 의아했습니다. 게다가 타인의 얼굴로 작업할 경우에는 허락을 받아야 하고 표정도 요구해야 하는데, 자화상일 때보다 훨씬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제 얼굴이 가장 손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다 보니 지금까지 자화상으로 작업하게 됐습니다.


신 ‘윤지선’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수 십 점의 작품 속에서 그 얼굴은 모나리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국의 전통 탈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결국 자화상에서 다른 얼굴들로의 확장이 중요한 과정이었을 텐데요. 윤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말로 잘 설명할 수 는 없지만 사진 속의 얼굴이 마치 ‘나를 이렇게 만들어줘’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를 좇아가다 보면 또 다른 이미지를 만나게 되는데, 애초에 작품을 통해 꼭 자신을 나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만약 제 자신을 나타내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말 그대로 자화상으로만 머물렀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작업은 자화상인 동시에 자화상이 아닌 묘한 지점이 존재합니다.


신 그 지점은 아마도 기억이나 학습, 또는 역사나 문화와 관련된 단서들이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겠지요. 그 과정을 통해서 이 작품들이 타인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의 얼굴이 될 수 있는 것이고요. 작품 완성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요? 윤 중간에 자주 쉬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 한 번 시작하면 보통 8시간 정도 꼼짝없이 작품에 매달립니다. 한 변이 1m가 넘는 작품의 경우, 평균 한달 이 상 걸려요. 이번 전시를 위해 3m가 넘는 작품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하루에 10시간 이상 매달려서 꼬박 55일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작업 과정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스스로 집중을 깨기 싫을 만큼 행복한 시간입니다.


신 관람자에 따라서는 얼굴을 바늘로 찌르고 실로 꿰매는 것이 금기시 되는 행동이라고 여겨서 공포심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은데, 스스로 금기에 도전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윤 아마 금기라고 생각했다면 못했을 거예요. 금기인 줄 모르고 시작했고, 사람들이 놀라면 그 반응 때문에 저도 놀랐습니다. 제 자신에게는 금기라고 여기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별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미술사를 살펴보면 금기에 도전하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몸을 직접 째고 꿰매기도 하고, 심지어 총을 쏘는 등 별의 별 작업을 이미 했잖아요. 이는 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 더욱 충격적이죠.


신 예술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술 작품을 통해서 전달되는 낯설고 충격적인 경험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윤 <인체의 신비>라는 전시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실제 사람을 해부한 인체가 진열된 전시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무척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나 경외심이 사라진 채 인체를 한낱 쇼로 만든 전시가 전세계를 순회하며 인기를 끄는 것은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에 비하면 사진에 바느질 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학생 시절 누구나 한 번 쯤 교과서에 있는 사진 위에 낙서를 하거나 얼굴에서 눈을 파내는 장난을 하잖아요. 자신이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다른 누군가 똑같은 행동을 작업으로 옮겨 와 집요하게 계속하면 무섭다고 반응하지요. 제 작업을 통해 이러한 자기 모순을 스스로 발견하고 다시 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후략)


글_신수진(사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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