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일우사진상 수상기념전 열고 있는 윤지선 작가
“붓과 물감 대신 바늘과 실로 그리는 자화상”
긴 머리, 짧은 머리, 웃는 표정, 찡그린 표정.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캔버스 위에 툭 튀어나온 실 뭉치들이 작업의 재료가 물감이 아니라 실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진 위에 재봉틀로 바느질을 한, 윤지선(40) 작가의 ‘누더기 자화상’이다. 서울 서소문동 일우스페이스에서 오는 7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독일의 아트북 전문 출판사 ‘핫제칸츠’가 단독으로 작품집을 출판해주는 일우사진상 수상기념전이다.
윤지선 작가는 자신의 사진 위에 재봉틀을 드르륵 박아 다양한 표정들을 만들어냈다. 평면 밖으로 실로 바느질한 머리카락이 풍성하다. 익살맞은 표정의 자화상들을 바라보노라면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일우사진상 수상 기념으로 출간되는 핫제칸츠 사진집을 위해 1년 반 동안 다양한 ‘누더기 자화상’ 시리즈를 작업해온 작가는 사진집 출간을 즈음해 전시를 오픈했다. 이번 전시에는 ‘누더기 자화상’ 시리즈 중 핫제칸츠 사집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보였다.전시된 작업의 모델은 모두 작가 자신이다. 분위기나 표정이 제각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이목구비를 가진 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한남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윤작가가 사진과 재봉틀을 이용한 자화상 작업을 해온 지도 7년이 넘었다. 윤 작가가 이 작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이다. 그 직전 다뤘던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얼굴에 바느질 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 전에는 사진에다 한의원에서 쓰는 침으로 구멍 뚫는 작업을 했었다. 그 작업이 너무 힘들어 재봉틀로 뚫어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닌 이상한 작업이 나왔다. 재봉틀로 구멍 뚫은 작업을 보면서 신문에서 봤던 어느 사진이 떠울랐다. 이란 사람이 인권문제를 얘기하면서 자신의 얼굴에 바느질을 하고 시위하는 사진이었다. 나는 말장난에서 작업 힌트를 얻기도 하는데 우리말 중에는 ‘미싱으로 입을 박아버릴까’라는 말이 떠올라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윤작가는 작업 초반에는 증명사진으로 작업을 했고, 점차 다양한 표정의 사진을 직접 찍어 작업을 하는 지금의 스타일로 발전했다.
“초기 작업은 교과서에 펜으로 낙서하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 때 한창 아바타가 유행할 때여서 사진에 머리카락을 새롭게 넣는 등의 실험을 했다. 그런데 작업을 할수록 점점 회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회화에서 회(繪)자는 실사(糸)에 모일 회(會)가 결합된 글자다. 그게 회화다. 내가 서양화를 전공하다보니 회화적인 걸 좋아하는 취향이 있는데 이 작업을 하다보면 마치 붓질같기도 한 바느질이 많이 나온다.”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재봉틀을 잡고 바느질을 한다. 무척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재봉틀을 돌리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에 열 시간도 넘게 작업을 하고 있다. “앉아서 바느질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작품을 하나 끝내려면 한두달 정도 걸리는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하는데 나는 즐겁다.”
작가는 ‘누더기 자화상’시리즈가 관람객들에게 유머러스하게 다가가기를 바라고 있다. 작업 속에 담고 싶었던 것은 그 하나다.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이 보여 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작품으로 보여지기를 바란다. 다만 원하는게 하나 있다면 작품에 유머를 넣고 싶었기에 그걸 느껴주면 좋겠다. 자세히 보면 웃기다.”
오직 자신의 사진에만 바느질을 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누구도 자신의 얼굴에 바느질을 하는 것에 대해 흔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작가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얼굴 사진에 어떻게 바느질을 하냐고 한다. 사진 찍으면 혼이 나간다고 생각하는 건 미개하다고 여기면서 정작 자신의 사진에 바느질 하는 건 꺼린다. 사진을 오브제로만 보라고 가르쳐준 분들조차 아직도 어떻게 얼굴 사진에 먹칠을 하느냐고 꺼려한다.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의 학습과 인식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얼굴도 재봉틀로 다 박아보고 싶었다.”
해보고 싶은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바느질 자화상’ 시리즈는 당분간 지속할 생각이다. 특히 자신의 사진 뿐 아니라 좋아하는 작가의 작업에 옷을 입혀주는 작업 등을 시도해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현재 대전에서 거주하면서 작업하고 있는 윤작가는 더 좋은 작업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꾸준히 창작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묵묵히 자신의 작업 세계를 탐구해가고 있는 지역 작가들을 보면서 작업적 태도를 가다듬는다.
“대전 지역 작가들은 대단히 묵묵히 작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작가들을 보면서 나도 어떻게 하면 저 선생님들처럼 묵묵히 작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주변에 좋은 작가들이 있다는 게 큰 행운이다.”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일보다 작업이 재미있기 때문에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작업이 내게 가장 소중하고 재미있어서 작업을 한다. 내가 재미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재미없으면 남들도 재미없다. 또 남들이 재미있다고 해도 내가 재미없으면 그만두자고 생각하고 있다. 작업은 내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작품을 비즈니스맨처럼 팔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곰만 되고 싶지도 않다. 왕 서방도 되고 싶다. 그러나 모든 걸 떠나서 작품이 허접하면 곰도, 왕 서방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좋은 작품을 해봤으면 좋겠다.”
또 아직까지 스스로 인정할 만큼 좋은 작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작업이 나오기를 바란다. “작품을 보면서 나 혼자 ‘브라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금세 이것 밖에 안 되냐 하면서 머리털을 쥐어 뜯는다. 그렇게 계속 헛갈리는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한다. 수 십 년 작업하신 주변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면 선생님들도 아직 헛갈린다고 하신다. 그래서 요즘은 계속 고민해나가는 것도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드신 분들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고민을 안 하는게 늙는 것일 수 있겠구나 싶다. 뭔가 찾아가는 것이 젊은 작가인 것 같다.”
일우사진상 수상 사진집 출간과 전시회 때문에 꼬박 2년 가까이 바느질을 해온 덕분에 하고 싶은 다른 작업들이 드로잉 노트 속에 쌓여있다. 하고 싶었던 작업을 재미있게 하는 것, 그것이 올해 윤지선 작가가 추구하는 유일한 작업 방향이다.
글, 사진=김효원 스포츠 서울기자 hwk@artmuseums.kr 동영상 촬영=전정연 기자 funny-movie@hanmail.net
2014.5.26